섣달 그믐날 하루전, 새해를 여는 이어령선생의 기도문을 나눕니다.
독실한 신앙으로 목사였던 따님을 잃고 나서 딸의 간절한 소원 들어주는 아버지로, 카톨릭에서 영세 받아 신앙의 길로 들어선 일로 몇해 전에 주목받았던 우리 한국의 지성, 양심의 소리로 '새해의 기도'를, 설 명절 앞둔 '청야의 해' 벽두에 다시 새겨봅니다.
저는 매해 발표하신 줄 알았는데,작년 벽두에 대한 것과 끝 대목 비슷해 확인해보니 같은 것ᆢ
그만큼 감동도 시간이란 급살 물결에는 이리 사정없이 가슴의 자욱도 씻기어가는, 이 갈수록 초라해지는 기억력에는 어찌 대응해야할지...
그만큼 울림이 커서 매번 신선하고, 감동의 깊이가 더한다는 반증으로 자위할랍니다. ㅋㅋ
올해 또 읽어도 가슴 저미며, 신선한 감동 그 자체입니다.
所願詩 / 李御寧
벼랑 끝에서 새해를 맞습니다.
덕담 대신 날개를 주소서.
어떻게 여기까지 온 사람들입니까.
험난한 기아의 고개에서도
부모의 손을 뿌리친 적 없고
아무리 위험한 전란의 들판이라도
등에 업은 자식을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남들이 앉아 있을 때 걷고
그들이 걸으면 우리는 뛰었습니다.
숨 가쁘게 달려와 이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눈앞인데 그냥 추락할 수는 없습니다.
벼랑인 줄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어쩌다가 '북한이 핵을 만들어도 놀라지 않고, 수출액이 5000억 달러를 넘어서도 웃지 않는 사람들이 되었습니까?
거짓 선지자들을 믿은 죄입니까?
남의 눈치 보다 길을 잘못 든 탓입니까?
정치의 기둥이 조금만 더 기울어도,
시장경제의 지붕에 구멍 하나만 더 나도,
법과 안보의 울타리보다 겁 없는 자들의 키가 한 치만 더 높아져도, 그때는 천인단애(千仞斷崖)의 나락입니다.
비상(非常)은 비상(飛翔)이기도 합니다.
싸움밖에 모르는 정치인들에게는
비둘기의 날개를 주시고,
살기에 지친 서민에게는
독수리의 날개를 주십시오.
주눅 들린 기업인들에게는
갈매기의 비행을 가르쳐 주시고,
진흙 바닥의 지식인들에게는
구름보다 높이 나는 종달새의 날개를 보여 주소서.
날게 하소서.....
뒤처진 자에게는 제비의 날개를,
설빔을 입지못한 사람에게는 공작의 날개를,
홀로 사는 노인에게는 학과 같은 날개를 주소서.
그리고 남남처럼 되어 가는 가족에는
원앙새의 깃털을 내려 주소서.
이 사회가 갈등으로 더 이상 찢기기 전에 기러기처럼 나는 법을 가르쳐 주소서.
소리를 내어 서로 격려하고
선두의 자리를 바꾸어가며
대열을 이끌어 간다는 저 신비한 기러기처럼
우리 모두를 날게 하소서.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어느 소설의 마지막 대목처럼
지금 우리가 외치는 이 소원을 들어 주소서.
은빛 날개를 펴고 새해의 눈부신 하늘로 일제히 날아오르는 경쾌한 비상의 시작!
벼랑 끝에서 날게하소서.



